본문 바로가기

DNA

DNA 절단 없는 후성유전학적 편집: 유전체를 자르지 않고 “유전자 스위치”를 다시 배선하는 기술

CRISPR 유전자 가위의 상징은 DNA 이중가닥을 자르는 Cas9 절단이었지만, 최근에는 “자르지 않고도” 유전자 기능을 바꾸려는 접근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가 DNA 절단 없는 후성유전학적(=후성유전체, epigenome) 편집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DNA 염기서열을 바꾸는 대신, 특정 유전자 주변의 DNA 메틸화히스톤 표지 같은 “조절 상태”를 표적 위치에 쓰기(write)·지우기(erase)·조합하기로 바꿔서, 유전자 발현을 켜거나 끄는 방향으로 세포의 동작을 재프로그래밍합니다. 

후성유전학적 편집이란: “서열”이 아니라 “상태”를 편집한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같은 DNA를 가진 세포라도, 어떤 유전자를 읽고(발현) 어떤 유전자를 닫아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한다는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때 중요한 조절 레이어가

  • DNA 메틸화(DNA methylation)
  • 히스톤 변형(예: H3K27ac, H3K9me3, H3K27me3 등)
  • 이 표지들을 인식하는 리더(reader) 단백질과 크로마틴 구조 변화
    입니다. 

후성유전학적 편집(epigenome editing)은 이런 표지(또는 표지를 만드는 효소)를 원하는 유전자 자리(프로모터/인핸서 등)에만 보내 “로컬한 크로마틴 풍경”을 재작성하는 기술로 정리됩니다. 특히 CRISPR-dCas9의 등장으로 “어떤 위치를 바꿀지”를 gRNA로 손쉽게 지정할 수 있게 되면서 발전 속도가 크게 빨라졌습니다. 

“DNA 절단 없음”의 핵심 부품: dCas9(죽은 Cas9) + gRNA + 후성 이펙터

DNA를 자르지 않으려면, Cas9의 절단 기능을 꺼야 합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dCas9(catalytically dead Cas9) 입니다. dCas9은 DNA를 정확한 위치에 결합할 수는 있지만, 절단(가위질)은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dCas9에 다양한 단백질 도메인(이펙터)을 붙이거나(융합) 혹은 모집(recruit)하여, 그 위치에서 표지 변화를 일으키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또한 이런 “프로그래머블 DNA 타깃팅 + 이펙터 결합” 플랫폼은 CRISPR만 있는 게 아니라, 징크핑거(ZF), TALE 같은 단백질 기반 DNA 결합체로도 구현 가능합니다. 다만 CRISPR-dCas9은 gRNA 설계로 표적을 바꿀 수 있어 멀티플렉싱(여러 유전자 동시 조절)에 강점이 있다는 점이 자주 강조됩니다. 

 

1) 전사 억제·활성 중심의 “스위치 조절”: CRISPRi와 CRISPRa

후성유전학적 편집을 넓게 잡으면, 가장 대중적인 하위 영역이 CRISPRi(억제)와 CRISPRa(활성)입니다.

 

CRISPRi: dCas9-억제 도메인으로 발현을 낮춘다

초기 대표 사례로, dCas9에 억제 도메인(KRAB 등)을 붙이면 표적 유전자의 전사가 강하게 떨어지는 CRISPR interference가 가능하다는 것이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dCas9-KRAB를 인핸서에 붙여 H3K9me3(억제성 표지)를 유도하고, 크로마틴 접근성을 낮추며 주변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등 “후성 표지 변화”가 동반되는 실험도 보고되었습니다.

 

CRISPRa: dCas9-활성 도메인으로 발현을 올린다

반대로 dCas9에 활성 도메인(VP64 등)을 붙이거나, sgRNA에 aptamer를 붙여 추가 활성 인자를 불러오는 SAM(synergistic activation mediator) 같은 시스템을 쓰면 내인성 유전자의 전사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CRISPRi/a는 “후성 표지를 직접 ‘쓰기’”보다는 전사 기계(또는 억제 복합체)를 끌어오는 조절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효과 지속성은 전달 방식/발현 기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지속적 발현이 필요할 때가 있음). 

 

2) DNA 메틸화 “쓰기·지우기”: DNMT3A(쓰기)와 TET1(지우기)

더 “후성유전학적 편집”다운 핵심 축은 DNA 메틸화 편집입니다.

 

dCas9-DNMT3A: 특정 자리만 메틸화해서 유전자를 잠그기

대표 연구로, dCas9에 DNMT3A(새 메틸화를 만드는 효소)를 붙여 특정 유전자 주변에 메틸화를 설치하고 발현을 조절하는 접근이 제시되었습니다. 

 

dCas9-TET1: 메틸화를 지워 유전자를 다시 켜기

반대로 dCas9에 TET1(탈메틸화 경로의 핵심 효소 도메인)를 붙이면 표적 부위의 메틸화를 줄여 유전자 발현을 되살리는 방향의 실험도 제시됩니다. 

정확도 문제와 해결책: “직결합(dCas9-DNMT3A)”의 오프타깃을 줄이는 SunTag

DNA 메틸화를 직접 쓰는 시스템은 강력하지만, “원치 않는 메틸화”가 생기면 해석과 안전성 모두에 문제가 됩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dCas9에 반복 태그(SunTag)를 달고 DNMT3A를 모듈식으로 모집해 효율·특이도를 개선하는 시스템이 제안되었고, “직접 융합” 방식의 광범위 오프타깃 메틸화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리됩니다. 

 

3) “기억하는” 후성 편집: CRISPRoff와 CRISPRon

후성유전학적 편집의 흥미로운 지점은, 어떤 경우에는 효과가 “일시적”이 아니라 세포분열을 거쳐도 유지되는 기억(memory)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CRISPRoff: 한 번 써 두면 오래 가는 유전자 침묵 프로그램

CRISPRoff는 dCas9에 DNMT3A/DNMT3L 및 KRAB 같은 요소를 결합해 DNA 메틸화와 억제성 크로마틴 상태를 함께 형성하여 지속적(heritable) 유전자 침묵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일시적으로 CRISPRoff를 발현해도 표적 침묵이 매우 많은 세포 분열 동안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CRISPRon: “쓴 침묵”을 다시 되돌리는 지우개/활성화 조합

CRISPRoff가 만든 억제 상태는 CRISPRon 같은 접근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설명도 함께 제시됩니다. CRISPRon은 기본적으로 메틸화를 제거(TET1 등)하고 전사를 다시 올리는 조합을 통해 “꺼진 유전자”를 재활성화하는 쪽으로 소개됩니다. 

4) 히스톤 표지 편집: p300(아세틸화), LSD1(탈메틸화), EZH2(메틸화) 등

DNA 메틸화만큼이나 많이 쓰이는 축이 히스톤 표지 편집입니다.

 

dCas9-p300: 인핸서/프로모터에 H3K27ac를 “써서” 유전자 활성화

대표 연구로, 절단 기능이 없는 dCas9에 인간 p300 아세틸전이효소 코어를 붙여 표적 부위에 H3K27ac를 높이고 유전자 발현을 활성화하는 방식이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인핸서처럼 “멀리 떨어진 조절 요소”를 겨냥해도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받았습니다.

 

dCas9-LSD1: 활성 인핸서를 “해체(decommission)”해 발현 억제

인핸서 기능을 억제하기 위해 dCas9에 **LSD1(히스톤 탈메틸화 효소)**를 붙여 인핸서 표지(H3K4me2 등)를 바꾸고 발현을 낮추는 접근도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인핸서를 기능적으로 주석 달기(어떤 인핸서가 진짜로 필요한가)”에 특히 유용합니다.

 

중요한 경고: “표지 하나”만 올린다고 항상 원하는 효과가 나오진 않는다

후성 표지의 세계는 생각보다 비선형입니다. 예를 들어 dCas9 기반으로 특정 억제성 히스톤 메틸화를 설치해도, 그 자체만으로 목표 유전자 억제가 항상 강하게 일어나지는 않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예 여러 종류의 크로마틴 표지를 정밀하게 설치하고 단일세포 수준에서 전사 반응의 크기/이질성을 계량한 연구가 나오면서, “어떤 표지가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를 체계적으로 풀려는 흐름도 강해졌습니다.

 

“DNA를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 주는 실질적 장점

DNA 절단 없는 후성유전학적 편집이 각광받는 이유를 기능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전체 서열을 바꾸지 않고도 유전자 기능(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
  • DSB 기반 편집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절단-수선 과정의 불확실성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조절”에 가까운 개입을 설계할 수 있다(개념적 이점). 
  • 한 번에 여러 유전자/조절 요소를 겨냥하는 멀티플렉싱과, 유전체 전반의 조절 요소를 찾는 풀드 스크리닝에 잘 맞는다. 
  • “서열 변이”가 아니라 “조절 이상”이 핵심인 경우(인핸서/프로모터 기능 장애 등)를 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다. 

대표 활용처: 연구 도구에서 ‘치료 공학’ 가능성까지

1) 조절 요소(인핸서/프로모터) 기능 스크리닝

dCas9-KRAB(억제)와 dCas9-p300(활성)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 주변 DNase hypersensitive site 등을 대규모로 타깃팅하여, 어떤 조절 요소가 실제 발현에 중요한지 찾는 CERES 같은 스크리닝 전략이 제시되었습니다. 

2) 질환 관련 유전자 발현을 “위로 끌어올리는” 접근의 예

예를 들어 CFTR 유전자 조절을 dCas9 기반 후성유전체 편집으로 탐색하고, 특정 조절 영역을 겨냥한 활성화가 CFTR 발현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다룬 연구도 보고됩니다(치료 자체가 아니라 “조절 메커니즘 + 잠재적 개입 지점” 탐색에 가깝게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3) 전달(Delivery) 기술과 결합

후성 편집기의 큰 현실 장벽은 단백질이 크고 복합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AAV 같은 벡터의 적재 한계와 장기 발현에 따른 리스크가 논의되어 왔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엔벨로프 바이러스 유사 입자(eVLP)**를 활용해 CRISPRoff, CRISPRi, DNMT3A-3L-dCas9, TET1-dCas9 등을 **RNP 형태로 ‘일시 전달’**하는 플랫폼(RENDER)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한계와 주의점: “서열을 안 바꾸니 안전”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DNA 절단이 없다고 해서 고려할 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 오프타깃 결합과 간접 효과

dCas9도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이므로, 설계에 따라 비특이 결합이 생길 수 있고, 이펙터 도메인이 강력할수록 간접 전사 변화가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DNA 메틸화 편집에서는 “직접 융합 방식”에서 광범위 오프타깃 메틸화가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를 완화하려는 SunTag 같은 모듈식 설계가 제안되었습니다.

2) “지속성”은 장점이자 부담

CRISPRoff처럼 세포분열을 거쳐도 유지되는 침묵이 가능하다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원치 않는 장기 효과가 생기면 되돌리는 전략(예: CRISPRon)과 안전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3) 맥락 의존성: 같은 표지도 자리/세포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후성 표지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이기도 해서, 특정 표지를 억지로 설치했을 때 효과가 항상 강하게 나오진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 의존성을 단일세포 수준에서 계량하고, 여러 표지의 조합 효과(예: Polycomb 관련 표지 조합이 침묵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음)를 분석한 연구가 등장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 DNA 절단 없는 후성유전학적 편집은 “유전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다루는 방식”을 바꾼다

DNA 절단 없는 후성유전학적 편집은, 유전체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편집과 달리 조절 레이어를 정밀하게 다시 작성함으로써 유전자 기능을 바꾸려는 접근입니다. dCas9를 기반으로

  • CRISPRi/a처럼 전사 억제·활성 조절을 하거나 
  • DNMT3A/TET1로 DNA 메틸화를 쓰고 지우거나 
  • p300/LSD1 같은 히스톤 표지 편집으로 인핸서·프로모터의 상태를 바꾸는 
    다양한 “모듈형 도구상자”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분야는 “표지 하나 = 결과 하나”로 단순화하기 어렵고, 맥락 의존성·오프타깃·전달·지속성 같은 현실 이슈를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 중입니다.